2014년 5월 18일 일요일

Issue01. 마을만들기를 하는 나의 고민들_이현선



 
마을만들기를 하는 나의 고민들
@이현선, 안산시 좋은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사무국장, 6년 차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에서 일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게 될 줄 몰랐는데, 어느덧 이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6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안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실이나 연구소에 취직하려던 나의 미래는 안산에서 마을 만들기를 만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을만들기는 운동이다. 다양한 도시문제에 대한 대안적 실천이고, 따라서 정부주도의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시민단체 주도의 활동이다. 이러한 동작원리가 낯설었다. 평소 이렇게 다양한 도시문제를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시민단체는 알지도 못했다. 지원센터에서 일한 초기 3년간은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하는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 일을 계속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고, 이 일의 의미와 전망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다. 이 글의 제목이 고민인 것은 지난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는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다행히 현재는 많은 도시에서 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고, 정책과 제도가 마을만들기를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외롭다는 생각은 전보다 적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마을만들기에 집중하는 건축/도시/환경 분야의 전공자가 흔치 않은 상황은 나의 고민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확장하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지금 정리하는 나의 고민이 얼마큼 깊이가 있고, 이 글을 읽는 전문가들에게 공감을 줄지 걱정이다.
 
첫 번째로 마을의 작은 변화가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도시는 마을들로 구성되어 있고, 건강한 마을들이 건강한 도시를 만든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나의 6년간 활동으로 안산시는 더욱 좋은 도시가 되었느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나는 쉽게 답을 못하겠다. 마을의 작은 변화들이 도시차원에선 잘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 마을을 염두에 두면서, 분명히 변화가 있고 다만 감지하지 못할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최근 도시재생의 사례를 목격하면서 도시적 차원의 변화는 당연히 도시적 차원의 사업이어야 변화를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을만들기는 도시 만들기와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지 않고서는 좋은 도시 만들기는 개념적 이야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안산에서는 어린이놀이터를 대상으로 한 마을만들기를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다. 매년 1개씩 환경개선과 이를 유지 관리할 주민조직 만들기를 해왔다. 그러나 안산시에는 약 130여 개의 어린이놀이터가 있고, 우리는 고작 5개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활동의 확장을 막는 장애는 예산뿐만 아니라, 어린이놀이터에 관한 정책과 제도의 부재이기도 하다. 마을만들기 개수가 늘어감과 동시에 어린이놀이터에 관한 안산시의 정책과 제도가 충분해진다면 안산시 전체의 변화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누가 해야 하는 일일까? 정책을 만들어내는 일까지 지원센터가 할 수 있을까?
 
두 번째로 일상의 장소성에 관한 질문이다.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우리의 건축교육에서 장소성의 획득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모든 프로젝트에서 빠지지 않는 가치였다. 이 개념이 마을만들기에도 존재하는데,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기념할 만한 것이라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장소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마을만들기를 하면서 장소성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모이고 활동하는 공간적 거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전통적인 커뮤니티 공간인 우물, 마을회관은 현대도시에서 근린공원, 어린이놀이터, 주민센터, 작은도서관 등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장소성을 주목하는 다른 이유는 장소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의식변화에 있다. 학교에서 배웠던 장소성은 관념적이어서 현실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을만들기는 사람들에게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강화시키고, 지역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각을 하게 하여서, 종종 마을이 위기에 닥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발적 활동으로 발현되었다. 지역의 실제 현안을 해결하는 민간의 역량으로 나타나는 구체적 동작원리를 보여주고 있고, 때론 공공의 역량에 비견될만하여 민관 파트너십을 이루는 점도 놀랍다.
만약 이러한 활동이 지역에 축적되고, 참여하고 공감하는 주민들이 늘어난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혹시 마을만들기 활동의 기억들이 모여서 마을의 기억으로 집단화될 여지가 있을까? 그래서 마을이라는 장소의 기억으로 집단화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도시이미지에서 배웠던 상과도 관계된다. 과연 미래의 활동에 영향을 줄 어떤 이미지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얼마만큼 활동이 모여야, 또는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마을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전통적인 도시와 다르게 신도시라는 특성은 그 속성을 강하게 할까 아니면 약하게 할까? 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셋째로 주민참여 디자인에 대하는 우리 전문가의 태도이다. 주민참여는 주민과 만나는 일을 기획하고 실제로 주민과 대화를 진행하는 일이다. 이 일은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흔한 오류는 원탁회의에 주민의 자리를 만들면, 주민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도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주민은 전문가가 아니다. 원탁에 앉았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왜냐면 회의는 전문가 중심의 어려운 용어와 절차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들을 교육시킨다. 하지만 교육에 참여하는 주민은 전체의 극히 일부이다. 마을을 대표하는 주민들과 교육에서 원탁회의까지 한다 한들 마을주민 모두의 의견은 아닌 셈이다.
문제해결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는 주민참여에 관한 설계이다. 대표주민조직은 어떻게 선발하며, 그들에게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 라는 목표설정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참여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서 전문가 그룹을 파트너십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이라는 전문분야가 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과 단체를 찾는 것이다. 그들은 전문가의 용어와 행정의 절차에 익숙한 경우가 많다. 주민참여의 깊이에 따라서 단체와의 결합의 정도를 고려할 수 있겠는데, 갈등 지역일수록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와의 협력이 매우 필요하다.
 
마을만들기에서 일하면서 들었던 고민들로 도시차원에서 마을만들기하기, 일상의 장소성에 관한 생각, 주민참여 디자인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였다. 여전히 숙제이고 생각의 발전이 더딘 경우도 있다. 함께 더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
 
 
*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Issue 02 에서는 엄운진(건축도시공간 연구소)연구원의 글이 게재될 예정입니다.
*** 이 글의 PDF 형식은 다음 링크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bit.ly/1oDTJFR
**** Room_룸 은 건축과 도시분야의 다양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데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매달 온라인 블로그 http://roomforcity.blogspot.co.uk/ 통해서 만나게 될 Room_룸 에 글을 보내주실 분은 editor.theroom@gmail.com 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